이별을 피하고 싶을 때, 최선의 작별인사

계단뿌셔클럽 (65)

이별을 피하고 싶을 때, 최선의 작별인사

계단뿌셔클럽의 커뮤니티 프로그램 ‘크러셔 클럽’은 시즌제라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습니다. 좋은 점은 좋은 친구들을 새롭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끊임없이 이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내기 행사인 ‘어워즈’(결과공유회)를 준비할 때, 마지막 한 발을 남겨둔 양궁 선수의 심정이 됩니다. 다음 시즌에도 이 동료들과 멋진 모험을 함께 하고 싶은데, 이별을 피하려면 어떤 작별인사를 해야 하는지 너무 어려워서 모르겠거든요.

오늘의 주제는 이별을 피하고 싶어 최선의 작별 인사를 고민한 이야기입니다.

일단은 해피 엔딩

어찌저찌 우리 잘 해냈다고 설명하는 박수빈

‘26 봄시즌은 해피 엔딩이었습니다. 역대 최대 규모로 140명의 크루가 합류했고, 처음에 세웠던 목표를 모조리 다 달성했습니다. 사실 중간 중간 난관도 있었지만, 겨우겨우 돌파해냈습니다. 그리고 인원이 많아지면서 누군가 몸과 마음을 다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를 가장 걱정했는데요. 그런 일 없이 무사히, 기쁘게 잘 끝냈습니다.

시즌을 끝내는 행사인 ‘어워즈’는 이름처럼 ‘시상식’이 핵심입니다. 한 시즌 활약한 모두에게 존경을 표하며 다양한 상을 시상하고요. 상반기 함께 고생한 크루들끼리 롤링페이퍼에 담을만한 감사의 말들을 나눕니다. 또, 이뤄낸 것을 정확하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한계도 냉정하게 분석합니다. 앞으로의 계획도 맨 먼저 알립니다. 여기까진 그래도 준비를 착실히 잘 했는데요.

제 연습을 계속 들어야 하는 불쌍한 아이폰

늘 가장 고민되는 것은 ‘마지막 인사’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5분의 시간, 어떤 말로 진심을 전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가장 흥미롭고 괴롭습니다. 어워즈 전날까지 원고를 고쳤습니다. 민망하지만 녹음해서 들어보고, 이상한 부분은 다시 고치고 또 녹음해보면서 연습합니다. 이걸 20번쯤 해보면 원고를 대략 외우는데요. 겨우 17번 정도 했는데, 벌써 작별인사할 시간이 됐습니다.

‘26 봄시즌 작별인사

큰 나무

여러분, 이번 시즌 즐거우셨나요? (네!) 보람있는 시간이었나요? (네!) 저도 그랬습니다.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봤어요. 이번 시즌의 경험을 어떻게 기억하면 좋을까. 그 생각을 나누면서 작별 인사가 되지 않길 바라는 작별 인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나에게는 내가 믿고자 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아주 용감하고 진취적이고 멋진 문장이죠? 이 말은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하셨을 것 같지만, 사실은 이번 시즌 첫 크러셔 스토리 인터뷰에서 정복크루 이수님이 하신 이야기입니다. 저 이 대목을 읽다가 정말 앉아있던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어요. 제가 막연하게 느끼던, 크루 여러분이 가진 힘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 문장이었거든요.

근데, 좀 비장하고 거창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시계를 돌려 3달 전 스타팅 데이로 한 번 가볼까요?

그날 제가 갑자기 초면에 여러분께 '여러분은 믿고자 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면, 아마 여러분의 절반은 책상 아래로 휴대폰을 꺼내 가족이나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셨을 거예요. "여기 좀 이상한 데 같아. 잘못 온 것 같은데…?"

그렇지만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에게는 내가 믿고자 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봄시즌 목표를 모조리 달성한 지금, 여러분은 동의하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금까지 3시간 동안 신나게 떠든 이야기들 전부 여러분이 믿는 것을 스스로 행해서 세상을 바꾼 이야기였으니까요.

수많은 계단을 건너뛰어 '방문리뷰'를 900개 가까이 만든 것도, 400여 명의 게스트와 16,000개 넘는 장소를 정복해낸 것도, 뿌클로드로 한 달에 수천 명의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준 것도, 모두 그렇습니다. 이 모든 문제해결 성과들 중에서 여러분이 크러셔 클럽을 선택하지 않았을 때, 이루어졌을 일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며칠 전 수요일 지방선거였습니다. 다들 투표하셨죠? 혹시 공보물도 꼼꼼히 보셨나요? 저는 트집 잡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한 손엔 빨간펜, 한 손엔 형광펜 쥐고 열심히 읽었는데요. 깨알같은 약속들이 빼곡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야기는 거의 없었습니다.

실망스러웠죠. 그때 문득 스타팅 데이 때 얼핏 들었던 말이 떠올랐어요. "누군가 책임져주기를 바라는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커다란 힘을 가진 사람, 조직들이 알아서 잘 해주면 좋을텐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외면하는 시대입니다. 그것을 새삼 다시 확인하는 경험이 씁쓸했지만, 동시에 아주 자랑스러웠어요.

이런 시대에 자신이 믿는 것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묵묵히 차근차근 실천하는 훌륭한 사람들이 있고, 제가 그런 여러분의 동료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습니다.

저는 우리의 믿음이 거창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모든 곳에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의 자리가 있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이동약자의 시간이 있으므로, 우리의 자리를 만드는 건 모두를 위한 일이다.”

너무 당연한데, 해내려면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주말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친절해야 하고, 이동이 불편한 세상에서 리뷰를 쓰러 움직여야 하니까요. 그 어려움을 모조리 돌파하고 끈질기게 목표를 달성한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을 보내고 싶습니다. 아무나 하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정말 잘 하셨어요.

그래서 쑥스럽고 뻔뻔한 부탁을 드립니다. 가을시즌에도 빠짐없이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까 작전타임 내용 어떠셨나요? 파격적인 이벤트, 대대적인 변화, 폭발적인 성장, 한 번 더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어서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을지 저희 프론트 구성원들끼리 매시즌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아주 새롭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현장에서 보내주신 피드백들, 모두 공감하지만 여력 상 부족한 점을 모두 고치고 완벽한 모습으로 여러분 앞에 서지 못 할지도 모릅니다.

근데, 그래도 그냥 함께 해주시면 안 될까요?

같은 세계를 상상하며 근사한 모험을 함께한 여러분이 떠나신다면, 크러셔 클럽에는 어떤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 할 것이며, 저는 인생에 회의감이 드는 하루 하루를 보내다 성격 나쁜 마흔 살이 될 것만 같아요.

그러나 여러분이 함께 해주신다면, 이번 시즌이 그랬던 것처럼 다정한 사람들과 흥미진진한 모험을 또 한 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더운 여름의 초입입니다. 언제 끝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여름은 반드시 끝나고 가을이 옵니다. 살랑살랑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때 오늘의 이야기를 떠올려주세요.

변화가 필요한 것이 분명한 오늘의 세계에는 여러분의 특별한 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니 가을에 꼭 뵙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