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스러운 첫 축제의 기억
산문 (16)
DMZ 피스트레인에서 한 '우정원정대' 프로젝트가 흥행을 거뒀습니다.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이 음악 페스티벌에서 한바탕 신나게 대규모로 얽히며 노는, 못 보던 장면을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1,500명의 관객이 그 취지에 동의해 우정원정대원으로 합류했습니다. 인생 최고의 축제였습니다.
최고의 축제가 끝나고 나니, 문득 제 인생 첫 번째 축제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돌이켜보니 이 흥행의 복선이었던, 아주 수치스러운… 날카로운 첫 축제의 기억이 말이죠…
그들만의 축제

여러분 혹시 제가 동방신기 춤 추는 거 보고 싶은 생각이 있으신가요? 정말 끔찍하죠? 저도 안 보고 싶어요. 그러나 불행히도 스무 살의 저는 지금보다 경솔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단과대학 축제 공연팀에 들어가 두 달 연습한 동방신기의 <Rising Sun> 춤을 춘 것이 저의 첫 축제의 기억입니다. 일종의 학예회였습니다. 학생회 활동하는 학생들이 준비한 공연을 올리는 ‘그들만의 축제’였죠.
2년 뒤 단과대 학생회장이 된 저는 이 축제를 없애자고 제안합니다. 축제에 학생회비를 크게 쓰는데, 임원들끼리만 즐거운 축제를 만드는 건 민주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시엔 정의감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심술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옳음을 증명하고 싶은 알량한 마음이요. 당연히 축제를 기다려온 후배들이 거세게 반대했고, 결국 없애진 못 했습니다.

대신 조금 바꿨습니다. 공연팀 공연은 없애고 인디 밴드를 섭외했어요. 술과 안주를 사서 날씨 좋은 날 야외에 주점을 열었고요. 제목은 〈4320〉이라고 지었는데, 최저임금이 4,320원이라는 걸 알려보자는, 엉성한 기획이었습니다. 결과는 또 그들만의 축제였습니다. 그런데 이 수요없는 공급도 재밌었어요. 좋아하는 친구들과 밤잠 줄여가며 무언가를 준비하는 시간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자꾸 웃음이 나는 시간이었거든요.
소개팅 애프터로 오는 민주열사 추모제

대학 시절 마지막 축제는 '의기제'였습니다. 광주 민주화운동 때 세상을 떠난 선배, 김의기 열사를 기리는 추모제입니다. 무척 가치 있는 행사인데,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사회운동에 관심 있는 학생들만 가는 축제였습니다. 전부터 그게 아쉬웠던 저는 경쟁이 하나도 치열하지 않은 의기제 준비단장을 자원합니다. 그간의 쌓아온 실패의 경험을 넘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해 의기제 제목은 〈평범하게 살고 싶은 우리, 비정상인가요?〉였습니다. 80년의 대학생과 2015년의 대학생을 대조하는 기획이었습니다. 그들에겐 먹고살 걱정은 없었지만 민주주의가 없었고, 우리에겐 민주주의는 있지만 먹고살 걱정이 컸습니다. 김의기와 그 시절 대학생들이 잘못된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고 행동했듯, 우리 세대도 불평등과 줄어드는 기회 앞에서 같은 고민을 해보는 것, 그게 어쩌면 '김의기 열사의 정신'을 잇는 길이 아니겠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전년엔 추모 발언으로만 채워졌던 본판에 토크콘서트를 올리기로 합니다. 연사는 당시 몸값이 가장 높았던 지식인, 진중권 씨였어요. 문의해보니 섭외료가 600만 원이었습니다. 그런 돈 당연히 없죠. 저는 편지를 한 통 써서 그의 신간 사인회로 무작정 찾아가 건넵니다. 바로 전화가 왔습니다. "무료로 해요. 저에게는 김의기를 비롯해 먼저 떠난 친구들에게 진 빚이 있습니다"
제가 본 어떤 의기제보다 많은 사람이 왔습니다. 그날 학교 커뮤니티에 '소개팅 상대에게 진중권 보러 가자고 해서 애프터 성공했다'는 자랑이 올라왔습니다. 민주열사 추모제가 소개팅 구실이 되다니! 아주 기뻤습니다. 그들만의 축제에서 딱 한 발짝 나간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18년 뒤

이따위 수요 없는 공급은 없어지는 것이 낫다고 괴팍한 심술을 부리기도 했지만, 저는 사실 축제가 좋았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사고력과 체력을 몽땅 쏟아부어 공동의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이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번 허무했습니다. 우리끼리는 그렇게 재밌었는데, 막상 세상 사람 누구도 관심도 없고 오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 허무함이 제게 두 가지를 남겼습니다. 하나는 '다음엔 좀 더 사랑받는 걸 만들어보고 싶다'는 오기였고, 다른 하나는 '수요 없는 공급도 이렇게 재밌는데, 수요 있는 공급은 대체 얼마나 짜릿할까' 하는 기대였습니다. 우리가 만든 시공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 축제를 준비할 때마다 그 장면을 자주 상상했지만, 늘 상상으로만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번 DMZ에서 18년만에 그 장면을 보고 왔습니다. 우리가 준비한 ‘우정팔찌’를 찬 1,500명의 관객들, 페퍼톤스의 음악에 맞춰 신나게 원을 그리며 도는 거의 100명에 달하는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 모두가 행복해하는 장면입니다. 심술과 허무로 끝난 실패의 시간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근데, 원금 넣고 잊어버려 이자가 불은 통장처럼 돌아와 오늘의 환희를 만들어준 것 같네요.
너무도 궁금했던 수요 있는 공급의 맛이요? 눈이 감길 만큼 달콤, 짜릿했습니다.
그 시절 깔깔대고 투덜대며 이상한 축제들을 함께 만들었던 친구들이 떠오릅니다. 이제는 연락도 대부분 닿지 않지만, 즐거운 한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