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살 때 꼭 해보고 싶은 일
계단뿌셔클럽 (64)
50살은커녕 40살도 그다지 내다보지 않는 저에게 50살이 되면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후배들에게 호의를 베풀어서, 안 될 일을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최근에 어떤 분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호의 덕택에 안 될 뻔한 일이 세상에 나오게 되는 경험을 했거든요.
우정원정대to피스트레인

매년 6월 철원에서 열리는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은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페스티벌 중 하나입니다. 저도 작년에 처음 가봤는데 특별했습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없는데도 공연을 보게 만드는 힘 있는 큐레이션, 지역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초대하면서 생기는 세대적 다양성, 무엇보다 이상할 정도로 서로를 다정하게 대하는 관객들 간의 우정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작년 마지막 무대는 사랑과 평화의 〈함께 가야 해〉(2007)였습니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모르는 사람들과 기차놀이를 하며 '함께 가야 해'를 주문처럼 떼창하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년에는 반드시 계단뿌셔클럽의 친구들과 이곳에 함께 와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 생각을 계단뿌셔클럽 레터에 〈내년 6월, 계뿌클은 철원에 갑니다〉라는 제목으로 썼습니다.
그 결과 〈우정원정대〉가 탄생했습니다. 휠체어 사용 관객을 위한 '휠체어 탑승 셔틀'을 만들고, 다양한 장애 유형의 관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접근성 부스'를 운영합니다. 그리고 20여 명의 원정대원을 모집해 축제에 갑니다. 그래서 전에 없이 다양한 관객들이 어우러져 함께 노는 장면을 만드는 것, 피스트레인이 지향하는 '모두에게 열린 축제'를 구현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입니다.
어쩐지 잘 풀리더라

시작이 좋았습니다. 첫 단추는 피스트레인 사무국과의 협업을 성사시키는 것이었는데, 놀랍도록 수월했습니다. 첫 미팅에서 이게 왜 필요한지 설득하려고 열심히 준비했는데 그럴 필요 없었습니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던 일"이라고 하셨거든요. 세상에, 이렇게 일이 쉽게 풀리다니, 신난다!
다음은 '돈'입니다. 1,000만 원 이상의 프로젝트 운영 자금을 후원할 기업을 찾아야 했습니다. 쉽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1만 8,000명의 힙스터가 모이는 축제에 노출되고 싶은 기업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결과는 거절의 연속이었습니다. 의료비도, 장학금도 아니고 '놀러 가는 일'에 왜 돈을 써야 하느냐는 질문을 넘기가 어렵더라고요. 준비가 부족했던 겁니다.
카드를 다 썼다고 생각했을 때, 크러셔 데이(계뿌클의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에 오신 엄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엄 선생님은 큰 공익재단의 이사장이시고 계뿌클을 오래 지켜봐주신 분입니다. 엄 선생님께 푸념하면서 '혹시 관심 있을 기업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하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날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셨던 엄 선생님은 며칠 뒤 편지를 한 통 보내주셨습니다.
멀리서 열리는 생일파티 펀딩

발신자는 엄 선생님 당신이시고, 수신자는 올해 50살 생일을 맞은 동갑내기 친구들이었습니다.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에게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을 선물해 보자는 제안이 담긴 글이었습니다. 아래는 글의 일부입니다.
"(우정원정대 프로젝트가) 여러 가지 이유로 기업에서 도움받는 것이 어렵다면, 멀리서 열리는 생일파티로, 우리가 같이 열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어. 근사한 와인을 한 병 살 돈이나, 친구들과 저녁을 먹을 돈, 미리 점찍어둔 옷이나 나에게 줄 선물을 살 돈들을 모아서, 한 번도 페스티벌에 가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페스티벌을 선물할 수 있다면, 50살 생일을 기쁘게 축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 축제에 가고 싶지만 물리적 장벽 때문에 갈 수 없었던 이동약자 약 15명에게 '첫 페스티벌'이라는 기회를 제공하고,
- 장애인과 같은 공간에서 같이 즐겨본 경험이 없는 만 삼천 명의 청년들에겐 다른 사회 구성원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들고,
- 이동약자 관객을 받아본 적 없는 페스티벌 운영팀에겐 이 선례가 다음 해, 다른 페스티벌로 확산되는 시작점이 될 거라는
제안의 말이 참 좋았어.
올해의 기부금을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면, 같이 기금을 모아서 2026년을 축하하지 않을래? 그동안 고마운 기회도, 좋은 인연도, 행운도 많이 얻으며 열심히 살아온 우리의 50번째 생일을 함께 기념하는 프로젝트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함께하고 싶다면, 댓글이나 메시지로 연락 줘! 🙂 후원 링크가 든 구글폼은 댓글에 달아 둘게."
일주일 만에 필요했던 1,200만 원의 후원금이 모두 모였습니다. 내내 얼떨떨했습니다. 엄 선생님의 제안부터 펀딩이 완료되기까지 모든 과정이요. 커다란 고민이 이렇게 누군가의 배려로 단숨에 풀리니 감사하다는 생각을 넘어 송구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50살이 됐을 때 같은 일을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해봤는데요. 도울 수 있는 능력, 후배 세대와의 좋은 관계는 기본이고, 명랑한 상상력도 필요합니다. 이 멋진 일을 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아직 전례도 없는 우정원정대에서 가능성을 포착하시고, 냉소의 골짜기를 건너 뛰고, 그 가능성이 만개한 미래를 상상하실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거든요.
명랑한 상상력을 가진 능력 있는 50살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려나? 혹시 좋은 방법을 알고 계신 분이 있다면 댓글에 남겨 주세요. 배우고 싶으니까요!
즐거운 석가탄신일 연휴 보내셔요!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