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날 뻔했던 어제 행사
계단뿌셔클럽 (64)
계단뿌셔클럽은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인 4월 20일을 기념해 매년 4월에 ‘크러셔 데이’를 엽니다. 올해 크러셔 데이는 어제였습니다. 장장 6시간짜리 행사였습니다. 명장면이 많았습니다. 그중 딱 한 장면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눈물 날 뻔(흘리지는 않았습니다)했던 장면이 있었거든요.
박수빈이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던 순간입니다.
상황 설명

어제 행사에 오신 분은 180명쯤입니다. 크러셔 클럽의 주인공인 크루들이 중심이 되어 다양한 분들을 초대합니다. 평소에 계뿌클에 관심 있었던 분들, 크루의 친구들, 협업하는 팀들의 담당자분들, 후원자분들 등 다양합니다. 계뿌클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한날한시에 모여서 문제 해결 활동에도 참여하고,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세계에 관한 이야기도 듣습니다. 6시간 동안요.
행사의 피날레는 박수빈 공동대표님의 ‘마무리 인사’였습니다. 수빈 님의 임무는 ‘계뿌클의 후원자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계단뿌셔클럽은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2년 안에 1만 원 정기 후원자 2,000명을 모으지 못하면 망하기 때문입니다. 마이크를 넘기고 무대 아래로 내려와 긴장된 상태로 객석의 고요에 섞였습니다. 잘 해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요.
마무리 인사

“이 자리를 마무리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고민했는데요. 솔직하게, 저의 세계를 고백해 보면 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사실, 저는 ‘장애인 이슈’와 연결되는 삶을 살 거라고 생각하지도,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접근성 문제를 겪었지만 그래도 저의 노력과 좋은 운으로 문제를 잘 피해 왔어요. 제가 다니던 회사도 좋은 환경이었고요. 차별이 전혀 없었을까 싶으면 있었겠지만, 그걸 개인의 성취로 넘거나, 감사한 환경으로 우회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주가 장애인의 날이었죠. 그런 날에 국회의원이 휠체어를 타고, 전장연에 대한 이슈가 올라오고 해도, 모두 사정이 있겠지. 이해하는 척하며 관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감각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한번 관여하기 시작하면, 외면하기 어려워질 테니까요. 풀기 어려운 문제고, 잘하고 싶을 것 같고, 근데 그 일이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잘나가는 삶은 아닐 거 같으니까. 30년 이상 제가 만들어온 관성을 바꿔야 한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았던 거죠.
여러분, 관성은 무엇을 통해 바뀌는지 아시나요? 바로 외부의 힘입니다. 계뿌클을 하면서 처음에는 PM적, 영리적 사고로만 이 문제를 풀고 싶었어요. 그런데 사람들과 정보를 모으고, 이 문제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기 시작했어요. 이 활동이 “큰 힘이 됩니다”라고 말하는 분들, “이런 걸 보면 세상이 진짜 바뀔지도 모르겠어요. 아직 살 만하네요”라고 하는 분들이요. “새로운 곳에 갈 때, 이 정보가 도움이 되었다”는 후기는 물론이고요.
그렇지만, 하다 보니 막상 그 마음만으로 잘되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지금 이대로면 2년 뒤 이후의 계뿌클이 지속 가능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잘하면, 알아서 후원해 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했었어요. 좀 멋있잖아요-. 서비스 잘 만들고, 사용자 찾고 나서, 우리 이렇게 멋지니까 후원해 주실래요? 앞으로도 잘할게요! 산뜻하고, 질척거리지 않고. 제 세계 안에서의 최대치 같은 거죠. 마음의 빚을 지지 않으면서, 무해하게 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30년 동안의 관성이 쉽게 바뀌지는 않겠죠.
그러나, 이젠 아닙니다. 빚을 지더라도 잘해 보고 싶은 일이 되었어요. 사람들과 '정보 찾기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동약자-비이동약자가 교차하고, 그 모습을 보고 더 많은 이동약자들의 세계가 넓어지는 미래를 꿈꿉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도움을 요청드립니다. 계단뿌셔클럽에 후원자가 되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두렵지만 옳은 일을 하는 용기

그동안 저희는 빚을 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거, 잘 안될 수도 있잖아요? 그럼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제때 돌아가려면 빚이 없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사람에게 대가 없는 헌신을 부탁하거나 (크러셔 클럽처럼), 등가교환이 아닌 협력을 파트너들에게 요청하거나, 아니면 사람들에게 ‘희망’ 같은 걸 말한다거나, 그런 빚이 많이 쌓이면 ‘원하면 언제든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5년을 하며 알았습니다. 쿨하게 빚지지 않고 등가교환만을 반복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부탁하고, 고개 숙이고, 수없이 희망을 약속해도 될까 말까입니다. 저도 빚지는 게 싫습니다. 근데, 수빈 님은 더 심란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문제, 장애인이 겪는 차별이 얼마나 뿌리 깊고 잔인해서 해결이 어려운지 당사자로서 너무 잘 아니까요. 그래서 ‘우리 더 빚져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도 말하길 망설였습니다. 수빈 님은 이미 필사적으로 만들어 낸 안전지대를 떠나왔는데, 돌아가는 길마저 부숴 버리자는 말이니까요.
그래서 어제 빚을 지더라도 잘해 보고 싶다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친구로서는 보고 싶지 않았고, 동료로서는 기대했던 장면, 한 인간이 두려움에 맞서 옳은 일을 하겠다고 용기를 내는 모습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빈 님, 참 잘했어요!
당신의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