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도 불효자도 아닌 자식이 된 이유
산문 (15)
최근에 31년생 할머니와 91년생 손녀가 같이 쓴 <오늘내일하는 사이>라는 수필을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 95세 임봉근 선생님은 자신의 아들을 ‘효자도 불효자도 아닌 자식’이라고 설명합니다. 무릎을 쳤습니다. 이거 완전 저를 설명하는 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어버이날 특집입니다. 제가 왜 효자도 불효자도 아닌 자식이 됐는지,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인지 고민해 봤습니다.
효자가 되려면 불효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 저는 온화한 어른이지만, 반항심 가득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반항심의 핵심에는 ‘왜 저 어른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가령, ‘선생님이라면 전교 1등 준민이와 전교 100등 대호를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명제를 적어두고, 안 그런 선생님들을 볼 때마다 점수를 깎으며 속으로 화를 내는 거죠. ‘저 사람은 어른도 아니야!’ 하면서요.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조건 없이 사랑해야 하고, 부모의 기대와 바람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따라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해!’라고 정의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실 별 간섭하지 않는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기대와 바람을 무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온전히 제 뜻대로 살 수 있고, 제 뜻대로 잘 살게 됐을 때 비로소 부모의 책임을 다하게 해드린다고도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효자도 불효자도 아닌 자식이 됐습니다. 효자란 모름지기 부모의 기대와 바람에 부응해야 할 텐데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30년간 아득바득 노력하며 제멋대로 살았으니 효자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불효자라고 하면 좀 서운합니다. 큰 잘못 저질러 상처를 드린 것도 없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두쫀쿠의 깨달음

얼마 전에 집에 갔더니 미국 사는 사촌 여동생이 와 있었습니다. 두쫀쿠 대유행기였는데, 고모(저의 엄마) 먹어보라고 두쫀쿠를 사 왔더라고요. 별생각 없이 집어먹고 있었더니 엄마가 물었습니다. “대호야, 두쫀쿠 먹어봤니?”, “네, 그럼요.”, “먹으면서 엄마 사다 드려야겠다는 생각 안 해봤니? 딸 가진 엄마들은 진작 다 먹어봤는데 나는 아들밖에 없어서 내 돈 주고 사 먹었다.”
저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엄마한테 아주 정중하게 이렇게 말합니다(놀립니다). “저런… 역시 아들은 정말 쓸모가 없습니다. 그런데 엄마한테는… 아들밖에 없군요… 정말이지… 유감을 표합니다.” 이 일화를 인스타에도 올리고, 친구들에게도 많이 얘기했죠. 제가 즐겨 하는 ‘쓸모없는 아들’ 시리즈의 최신판입니다. 다정다감한 딸을 둔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엄마를 놀리는 농담입니다.
‘쓸모없는 아들’ 시리즈는 저의 오랜 개그 레퍼토리인데요. 최근에 약간…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관계가 역전됐습니다. 과거에는 제가 돌봄의 ‘대상’이었지만, 이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돌봄의 대상은 엄마, 저는 돌봄의 주체가 되어갑니다. 대상일 때는 도망 다녀도 귀엽지만, 돌봄의 주체가 돌봄을 방기하는 건 농담거리가 아닙니다.
나만의 효도 스타일

또래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노인의 삶을 준비하기 시작하는 부모님을 보며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마치 자녀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한 초보 부모 같기도 합니다. 해본 적이 없고, 의외로 모르는 것이 많고, 부담은 큽니다. 초기의 어떤 선택들이 훗날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아 걱정되기도 합니다.
부모가 되면 자녀를 잘 돌보기 위해 어린이에 관한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는 보통 안 하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을 잘 돌보고 관계 설정을 잘하는 데에 노인의 삶을 공부하는 것이 유용할 것 같습니다. 연금, 복지 정책, 여가 환경 같은 환경적인 내용부터 노인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건강과 같은 내재적인 내용까지 말입니다. 실제로 서두에 언급한 <오늘내일하는 사이>를 읽으면서 노년에 어떤 감정, 생각들이 드는지 엿볼 수 있어 유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저는 한 달에 두 번 엄마 모시고 전국 팔도 여행을 다닌다는, 한전 다니는 엄마 친구 아들 같은 전형적 효자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러기에는 (엄마 표현을 빌리자면) 너무 독립적인 사람으로 자라버렸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기대와 바람을 철저히 외면했음에도 큰 불만 없이 사랑을 쏟아 키워주었으니, 돌봄의 책임을 기쁘게 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실히 공부해서 나만의 효도 스타일을 잘 찾아봐야지, 올해 어버이날의 다짐입니다.
혹시 저처럼 돌봄과 효도에 대해 고민이 부쩍 느신 분 계세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고민이나 나만의 효도 스타일에 대한 의견도 남겨주시면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아요!
효도 저녁 식사 하느라 발송이 늦어진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