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필수 호신술
산문 (14)
AI 혁명이 일자리를 줄여버릴 미래는 ‘재난’과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관한 힌트를 역사에서 뽑아내보기로 했죠. 그 힌트를 찾기 위해 19세기 역사에 기록된 암흑의 50년으로 가보겠습니다. 그 50년의 이름은 ‘엥겔스의 휴지기’입니다. ‘엥겔스의 휴지기’라는 말을 기억해주세요.
50년의 지옥, '엥겔스의 휴지기'

1800년대 초 영국, 산업혁명이 시작됐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며 생산이 늘고, 혁신에 앞장선 기업들이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일자리는 줄었고 임금도 전혀 오르지 않았습니다. 이 추세가 50년 지속됐습니다. 끔찍하죠? 경제학자 엥겔스는 당시의 끔찍한 상황을 분석해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황>이란 책을 썼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엥겔스의 휴지기’라고 부르게 됩니다.
‘휴지기’가 끝난 1850년대부터 새로운 사업과 일자리가 쏟아졌습니다. 노동자들의 소득도 상승합니다. 기술혁명은 수십 년의 ‘하강기’를 가져오지만, 하강기가 끝나면 일자리가 늘어나는 ‘상승기’가 온다는 것까지가 중요한 교훈입니다. (이번엔 상승기가 없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많지만…ㅠㅠ) 아마 지금이 ‘엥겔스 휴지기’의 초입입니다. 이 과도기가 끝나고 지금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가 생기는 ‘상승기’가 올 수 있습니다.
이 역사의 교훈은 개인과 사회가 ‘엥겔스 휴지기’를 잘 대처해 상승기까지 버텨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처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는 ‘엥겔스 휴지기’를 최대한 단축해서 짧게 만드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줄이는 것이죠. 둘째는 ‘휴지기’에 발생하는 부작용과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둘 중,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할까요?
폭풍을 통제할 수 없다면, 벙커를 파야 한다

우리는 첫 번째 길('휴지기 단축')이 아니라 두 번째 길('부작용 최소화')에 집중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란 한국 사회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회 구성원들입니다. 그 이유는 AI 기술 발전의 속도를 우리의 노력으로 조절해서 휴지기를 단축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반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고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일입니다.
기술 발전의 속도의 결정권은 미국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에 있습니다. 우리는 반도체 제조에 능하지만, AI 원천 기술의 주도권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제도와 보조금으로 속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도, 실리콘밸리가 결정하는 혁신을 이식하고 적응하는 속도를 결정할 뿐입니다. 그리고 실리콘 밸리가 추구하는 속도는 이미 ‘최대한 빠르게’인 것 같습니다.
반면 부작용을 줄이는 노력은 잘 할수록 성과가 있습니다. 한동안 ‘일부 혁신 기업의 선전으로 경제는 성장한다는데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소득이 줄어들거나 그대로인 상황’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회는 이 재난 상황을 그냥 내버려둘 수도 있습니다. 저는 개입해서 기술혁신의 ‘과실’을 가능한 많은 사람이 나눠갖도록 다양한 방법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상승기’가 올때까지 가능한 많은 사람이 살아남도록 해야 합니다.
엥겔스 휴지기 필수 호신술

‘나’에 대한 노력과 ‘세상’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에 대한 노력은 ‘냉정한 현실 인식’입니다. 정말 어렵지만, 공들여 쌓아온 경력을 언제든 ‘0’으로 되돌릴 수 있는 냉정함이 필요합니다. 지난 편지에서 본 것처럼, 19세기 직조공들이 부랑자로 전락한 결정적 이유는 자부심과 고임금에 대한 미련이었습니다. 과거의 성취가 새로운 환경 적응의 약점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선택지를 늘려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개발자인 제 친구는 진지하게 농사꾼의 길을 고민해보고 있는데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향한 우리의 노력은 ‘새로운 분배의 룰’에 관심을 갖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입니다. '상승기'에는 다양한 산업이 팽창하며 각자의 노력으로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휴지기'는 다릅니다. 극소수의 혁신 기업만 부를 독식하고, 대다수는 일자리와 소득을 잃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경제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습니다. 기업이 뛰어난 기술로 물건을 쏟아내도,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지갑을 닫으면 결국 물건은 팔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파국을 막으려면 분배의 룰을 바꿔야 합니다. 정부가 돈을 거두고 쓰는 것을 불신하는 사람이 많지만, 정부가 누구에게 어떻게 돈을 거두고, 어떤 방식으로 쓸 것인지에 대한 열린 고민이 필요합니다. 기존의 편견을 거두고 로봇세, 데이터세, 기본소득 다 열어두고 토론해봐야 합니다. 새로운 상황에는 새로운 인식과 방식이 적합할테니까요.
‘러다이트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그 후에 어떻게 됐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엥겔스의 휴지기’에 접어들며 고민이 많아지는 우리 모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다음 번에는 다른 이야기 거리를 들고 올게요.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