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보다 어쩌면 중요한 것
계단뿌셔클럽 (61)
딱 1년 만에 계단뿌셔클럽의 성취를 외부에 발표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아산 비영리 스타트업 컨퍼런스(이하 ‘비스콘’)에 섰거든요. 그런데 작년과 영 다른 기분이었어요. 음… 뭔가… 창피했습니다.
유망주의 시간이 끝났다

작년에는 당당했습니다. 2024년 비스콘은 계뿌클의 성공적인 데뷔 무대였습니다. 비영리 생태계 동료들, 알만한 기업의 사회공헌 담당자들, 아산나눔재단 같은 지원기관 관계자들 앞에서 우리의 매력을 충분히 뽐냈습니다. 어떻게 무명의 계뿌클이 수천 명의 사람들과 함께 수만 군데 장소의 접근성 정보를 모을 수 있었는지 설명했고, 여느 다른 팀들처럼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올해도 비스콘 발표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발표 메시지를 잡는 데 작년처럼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봐도 메시지가 명료하지 않고, 부연 설명이 길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이유를 잘 몰랐는데, 곰곰이 생각하다 깨달았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모은 데이터, 우리가 만든 서비스를 활용해서 실제로 편리하게 이동하는 사람이 아직 많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몇 명의 이동약자가 쓰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아직 데이터를 모으는 기간이라 사용하는 사람까진 없지만, 충분히 데이터가 모이면 본격적으로 홍보를 해 볼 계획이에요’라고 답해 왔습니다. 작년 비스콘 때는 당당하게 그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근데, 올해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내년에는 많은 유저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왠지 창피했습니다. 상상 속의 청중들이 ‘아직도 데이터를 모으는 기간이라고?’라고 되묻는 것 같았습니다.
방어기제 발동

비스콘 2025 발표에서는 60여 명의 핵심 사용자를 만들어 낸 과정을 말했습니다. ‘60명’이 많지 않아 보이지만 그게 얼마나 우리에게 어려웠는지, 그 과정에서 얼마만큼 큰 배움이 있었는지 설명하며 어찌어찌 마무리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발표가 끝나도 ‘60명이 최선이었을까?’ 하는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60명이 아니라 1,000명이었으면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곧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유치하지만 ‘그래서, 내가 놀았나?!’를 생각해 보게 됐거든요. 젖 먹던 힘까지 최선을 다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나름 열심히는 했거든요? 평일에도 늦게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행사로 일하며 보낸 날이 많았고, 만나고 싶은 친구들도 별로 못 만났는데 얼마나 일하는 시간을 늘려야 했던 걸까, 대상 없는 반항심이 일었습니다.
반항심이 씩씩대고 있는데, 우뇌 한켠에서 자상한 변호인이 등장합니다. 애초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문제의 난이도에 비해 가진 자원이 얼마만큼 부족한지 설명합니다. 단 몇 명이라도 사용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60명이면 대단한 성취 아니냐고 달래기도 했죠.
맞아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 주었는데 아무도 안 쓰면 어떡하지?’는 저의 오랜 공포였습니다. 그래서 0에서 벗어난 것은 실제로 위안이 됐는데요. 그래도 60명이 아니라 1,000명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어요!
최선의 노력 대신 최선의 결정

1년 전으로 돌아가 어떻게 하면 60명이 아니라 1,000명의 핵심 사용자를 만들 수 있었을까, 곰곰이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가장 단순하고 정직한 것처럼 보이는 대답은 ‘더 열심히 한다’인데, 정답이 아닌 것 같습니다. 모든 선택을 동일하게 한 채로 시간을 더 썼다면 조금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는 있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60을 1,000으로 바꾸는 시나리오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최선의 노력’이 아니라 ‘최선의 결정’이 있었다면요? 몇 가지 결정을 바꾸었다면요? 올해 제가 가장 많은 시간을 쓴 일 중 하나는 ‘대기업 협업’이었습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많은 기업이 좋은 제안을 주셨고, 덕분에 1,500명 넘는 임직원분들과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임직원 참여 활동으로 데이터도 많이 모았고, 매출 목표도 50% 이상 초과 달성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협업이 직접적으로 이동약자 사용자를 늘리는 직접 효과는 없었습니다.
협업 전략을 ‘대기업 임직원 활동 협업’으로 잡았던 이유는 ‘제안이 먼저 들어와서’,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니까’였습니다. 그러니까 작년의 저를 찾아가 ‘2025 비스콘 때 1,000명의 핵심 사용자를 모았다고 말하려면 누구와 어떤 협업을 해야 할까?’를 묻는다면, 아마 이동약자가 많은 단체, 기관을 찾아갔을 것 같습니다. 그랬다면 1,000명은 몰라도 60명 이상의 사용자를 만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른들이 결정이 참 중요한 것 같다는 말 많이 하잖아요? 이제 그게 무슨 말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하면 마음이 묘하게 편해집니다. 그렇게 노력이 주는 낭만에 취해 ‘최선의 선택’을 고민하는 데에 게을러지는 경향이 저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약점입니다. 이 약점을 잘 경계해서, 내년 연말 어느 발표 자리에서는 당당하게 이만큼의 사람들이 잘 쓰고 있다고 말해 보고 싶어요.
우리 내년에는 조금 더 좋은 결정을 해 봅시다!
여러분의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