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인턴과 일하며 배운 것
계단뿌셔클럽 (60)
백 선생님은 우리 팀의 첫 인턴입니다. 처음에 약속했던 6개월을 넘어 9개월 동안 함께 일했고, 최근 퇴사하셨습니다. 막 대학을 졸업하고 온 백 선생님을 채용할 때 ‘계뿌클에서의 시간이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많은 것을 가르쳐드려야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가르쳐드린 것보다 제가 배운 것이 많았습니다.
첫 채용, 첫 고민

올해 초, 상반기 사업계획을 세워보니 수빈님과 제가 둘이서 해내기엔 무리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인턴을 뽑기로 합니다. 커뮤니티와 관련된 업무 중에는 단순한 것도 꽤 있었는데요. 그것들만 분담해주어도 좀 더 완성도 높게 사업을 꾸려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는 일이 다양해지고 규모가 커지는데, 둘이서 기획과 운영을 완벽하게 해내는 건 역부족이었거든요.
그때 지나가던 백 선생님이 눈에 띄었습니다. 백 선생님은 저희와 관계가 있는 다른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시다 막 수료하신 상황이었는데요. 오며가며 좋은 인상을 받았거든요. 긴밀하게 일을 같이 해본 건 아니었지만, 사람이 ‘감’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책임감이 강하고, 계뿌클이 푸는 문제가 자기 삶의 제 1문제는 아니어도 ‘필요한 일이지!’라고 생각해주실 것 같았습니다.
그 감은 적중했습니다. 백 선생님은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고, 사람을 대함에 있어 진정성이 있는 동료였습니다. 근데, 여기서 제 고민이 시작됩니다. 좋은 사람이 오면 일이 알아서 잘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100%, 120%, 혹은 그 이상의 역량을 발휘하도록 하려면 관리자가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문제는 제가 그걸 해본적이 없고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는 점이었죠!
‘과제’를 드려보면 어때요?

“취업할 때 쓸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으면서, 우리한테 지금 꼭 필요한 일을 과제로 드려보면 어때요? 근데 그 과제가 마냥 본인이 해보고 싶은 일이 아니라, 우리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는 거면 좋겠어요. 회사는 학교가 아니니까 필요한 일을 해야 하고, 필요로하는 일을 해내보 경험이 나중에 포트폴리오로 써먹을 때에도 더 도움이 될 거에요. 우리에게도 그렇고!”
갈피를 못 잡고 있으니 수빈님이 힌트를 주셨습니다. 저는 과제를 드린다면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물어보고 그것에 맞추려고 했는데요. ‘조직에 필요한 일을 줘야한다’는 수빈님 의견에 무척 동의가 됐습니다. 1:1 미팅을 준비했습니다. 지금까지 해오신 업무들을 나열해보고, 강점, 약점을 분석해보고, 그걸 바탕으로 백 선생님이 목표로 삼을만한 직무를 제시하고, 직무 별로 어울리는 과제까지 정해봤습니다. 물론,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들로요.
1:1 미팅을 해보니 그는 취업에 대한 고민이 무척 깊었습니다. 그의 핵심 고민은 ‘나는 어떤 일을 좋아하고 어떤 직무에 어울리는 사람인 걸까?’였습니다. 제가 3개월 간 관찰하며 분석하고 고민한 내용을 담은 리포트를 보여드렸더니 같이 훠궈 먹을 때처럼 좋아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제안한 과제를 하나가 아니라 두 개 다 해보고 싶다며 불타는 의지를 표명하셨습니다.
몰입의 짜릿함

백 선생님이 과제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 고민이 꽤 해결됐습니다. 평소에도 열심히 일하신다고 생각했지만, 과제를 밀어부치는 백 선생님의 모습에서는 ‘속도제한’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쇼츠 영상을 편집하는 모습, 책임을 맡아 수행한 다른 과제의 결과보고서에서 느껴진 고민의 흔적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거든요.
몰입하는 백 선생님을 보며 저 역시도 정말 큰 성장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리더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시키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당시 저는 솔직히 잘 시키는 데에 별로 자신이 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어렵습니다. 근데 백 선생님의 몰입과 성과를 만들어내는 경험을 하면서 저야말로 제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영역을 개척해낸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건 사실 대표적인 일일 뿐입니다. 초보 팀장인 제게는 모든 일이 처음이었고, 그래서 모든 것이 배움이었습니다. 공과 사를 적절히 나누면서도 친해지는 방법, 근거 있는 칭찬을 하는 방법, 도움이나 조언이 필요한 상황을 감지하는 방법, 쓴 소리가 담긴 피드백의 톤앤 매너를 정하는 방법, 적절한 회식 제안의 타이밍을 파악하는 법까지 백 선생님 덕분에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 배운 것이 있습니다. 떠나는 사람보다 보내는 사람이 아쉽다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떠나는 사람만 해봐서 잘 몰랐는데, 보내는 사람은 떠난 사람의 깨끗하게 치워진 빈자리를 매일 매일 봐야하는 거더라고요. 그 어지럽던 자리를 어쩜 그렇게 깨끗이 치우고 가셨는지!
가끔 여기 들어와서 읽어본다고 하셨죠?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은하님이 우리 팀의 첫 인턴이어서 참 좋았습니다.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신 덕분에 멋진 일들을 많이 해낼 수 있었거든요! 함께 보낸 정겹고 치열했던 9개월을 잊을 수 없을 거에요. 동료가 되어주셔서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