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만든 앱을 우리가 안 쓰는 이유

비영리 기술기업 이야기 (1)

정부에서 만든 앱을 우리가 안 쓰는 이유

‘테크 포 임팩트’는 IT 회사 직장인들이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비영리 조직들을 돕는 활동 프로그램입니다. 계단뿌셔클럽도 참여하고 있는데, 지난주 첫 만남 행사가 있어 다녀왔습니다. 인상 깊었어요. 앞으로 멋진 비영리 기술기업이 많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정부에서 만든 앱이 안 되는 이유

정부에서 일하던 시절의 이대호

우리는 시장경제 시스템에서 살고 있습니다. 시장경제 시스템의 장점은 ‘시장 수요가 있는 문제는 거의 다 풀린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빠르고 안전한 자동차, 편안한 집, 알싸한 마라탕, 상큼한 타코는 세상에 충분히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단점도 있습니다. 시장성은 없지만 중요한 문제도 세상에는 많은데, 그런 것들은 알아서 풀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 건 정부가 도맡아 하죠.

문제는 ‘디지털 공공재’를 만드는 데 정부가 정말 소질이 없다는 점입니다. 2023년 KBS의 보도에 따르면 홈택스, 정부24, 안전신문고, 성범죄자 알림e 등 정부가 만든 앱 중 실제로 사람들이 쓰는 건 몇 개 되지 않습니다. 큰돈을 들여 매년 수백 개가 만들어지지만 대부분 누구도 쓰지 않는 앱으로 버려집니다. 공공건축물, 복지 서비스 같은 건 잘 만드는데, 앱도 좀 잘 만들 수 없냐고요?

불가능합니다. 정부는 개발자, 디자이너를 채용해 앱을 직접 만들 수 없고, ‘위탁’해야 합니다. 위탁 구조는 의사결정도 느리고, 일하는 사람의 주인의식도 낮고, 초과 성과에 대한 보상도 적습니다. 개발비도 적죠. 그렇지만 큰 투자를 받아 매우 경쟁적으로 일하는 토스, 넷플릭스, 카카오톡 같은 ‘직영’ 앱들과 경쟁해 관심을 얻어내야 합니다.

이미 사람들의 삶은 스마트폰 중심으로 재편됐습니다. 그러므로 디지털로 해결하는 것이 효과적인 문제들이 많습니다. 계단뿌셔클럽이 앱 서비스를 안 만들고 종이 지도를 만든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게 효과적일까요? 디지털 공공재는 필요합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이유로 공공재를 만드는 정부가 디지털 공공재를 만들 수 없다면, 누가 할 수 있을까요?

계단뿌셔클럽 같은 비영리 기술기업이 필요해!

크러셔 클럽 행사장으로 탐났던 카카오 아지트 (출처: 카카오 임팩트)

저는 계단뿌셔클럽 같은 ‘비영리 기술기업’(미국에서는 nonprofit tech라고 부릅니다)이 딱 맞다고 생각합니다. ‘계단 문제’처럼 중요하지만 시장성이 없고, 기술로 잘 풀 수 있는 문제들이 세상에 많습니다. 정부는 이것을 풀 이유는 있지만 역량이 없고, 영리기업은 역량은 있지만 문제를 풀 이유가 없습니다. 비영리 기술기업은 문제를 풀 이유와 역량을 모두 가진 독특한 조직입니다.

이런 조직이 늘어나려면 비영리 기술기업을 (1) 창업하는 사람, (2) 함께 일할 사람이 늘어나야 하는데요. (1), (2)를 늘리는 데 ‘테크 포 임팩트’ 같은 프로그램이 아주 유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IT 직장인들을 “회사 일만 하기 심심하지? 평일 저녁이랑 주말에 사회문제 해결해 볼래?” 하고 꼬셔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거예요. 그렇지만 ‘공익의 맛’을 한 번 보면 ‘비영리’라는 새로운 세상의 매력을 알게 됩니다. 저희도 그랬거든요. 대부분은 사이드 프로젝트가 끝나면 원래 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중 누군가는 분명 “다음에는 비영리 조직으로 이직해 볼까?” 하고 생각할 수도, 맘에 드는 팀이 없으면 아예 비영리 기술기업 창업을 고민할 수도 있습니다.

규모가 커서 좋았다!

성대하다... (출처: 카카오 임팩트)

테크 포 임팩트 행사는 무엇보다 사람이 많아서 참 좋았습니다. 회사 일도 바쁜데 “퇴근하고 사회문제 풀 사람?” 하는 제안에 몇 명이나 응했을까 싶으시죠? 무려 400명 넘게 지원했다고 합니다. 7개 비영리 조직이 낸 고민별로 랩(Lab)을 만들고, 랩별로 지원자를 받았는데요. 계뿌클 랩에만 50명 넘게 지원했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 최종 선발된 인원은 약 15명 정도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IT 업계 직장인들 중에 이렇게 사회문제 해결에 열정적인 분들이 많다는 데 놀랐습니다. 긴 행사 내내 눈을 반짝이는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자리에 계신 누군가를 언젠가 동료로, 동료 창업가로 만나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더 성심성의껏 질문에 답변하고, 가능하면 방긋방긋 웃어드리려고 노력했는데, 도움이 됐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카카오가 테크 포 임팩트 사업을 오래오래 꾸준히 하면 좋겠습니다. 아마 1, 2년 안에 어마어마한 성과는 없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렇게 생태계를 기르는 일을 꾸준히 한다면, 테크 포 임팩트가 아니었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훌륭한 비영리 기술기업들이 탄생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계단뿌셔클럽도 직장인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한 팀 아니겠어요?


저는 오늘 상하이에 왔습니다. 와서 보니 ‘세계 AI 대회 2025’라는 어마어마한 행사를 하고 있네요. 중국 정부가 가장 공들이는 AI 컨퍼런스라고 합니다. 온 김에 좀 구경해 보려고 하는데, 재미있는 것들 보면 소개할게요!

알리페이가 안 되어 애먹고 있는 여러분의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