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내전이 일어날 수 있을까?
독후감 (1)

지난 1월 서부지법 폭동 사건 당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심각하게 걱정했습니다. 정치적 갈등이 폭력적 ‘내전’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컸습니다. 3개월이 지났습니다. 유사한 일은 또 없었습니다. 이대로 끝났을까요? 이 폭동은 내전의 징후가 아닌, 어쩌다 생긴 해프닝일까요?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이 찜찜한 의문을 풀기 위해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은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저자 바버라 F. 월터는 세계 곳곳의 내전을 연구하는 미국인입니다. 주로 중동, 아프리카, 동유럽의 내전을 ‘남 일’처럼 연구했습니다. 미국은 내전이 없는 선진국이니까요. 여러 사례를 분석해 사회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 때 내전 발생 가능성이 커지는지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내전을 부르는 원인을 늘어놓고 보다 당황했습니다. ‘이거 요즘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잖아?’
아래 문단은 책의 핵심 주장입니다.
어떤 나라가 아노크라시 상태가 되면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같이 공권력의 힘이 강한 나라에서도 내전이 일어날 수 있다. 사회를 내전으로 이끄는 원인에는 희망 소멸, 지위 격하, 소셜미디어 등이 있다.
아노크라시란 민주주의(Democracy)와 독재(Autocracy)의 합성어입니다. 바닐라, 초코 혼합 아이스크림처럼 민주주의와 독재가 혼합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선거를 치르긴 하지만, 독재자 혹은 특정 파벌이 권력을 독점하는 사회입니다. 태국, 캄보디아, 나이지리아 등이 있습니다.
‘아노크라시’로 가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민주주의였다가 독재화되어서 아노크라시 상태에 빠지는 경우, 완전 독재였다가 조금 민주화되어서 아노크라시 상태가 되는 경우입니다. 저자는 미국이 온전한 민주주의였다가 아노크라시로 가고 있고, 내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분석합니다. 한국도 최근 민주주의 점수(Polity Score)가 떨어지며 아노크라시에 다가가는 상황입니다.
희망소멸과 지위격하

책은 내전의 원인을 다섯 가지로 지목합니다. 제가 볼 때 한국에 해당하는 건 세 가지였습니다. 희망소멸, 지위격하, 소셜미디어입니다. 소셜미디어가 폭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잘 아실 테니까요. ‘희망소멸’과 ‘지위격하’를 순서대로 설명하겠습니다.
누구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가장 먼저 ‘제도’를 이용합니다. 제도 내에서 해결이 안 되거나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시위’를 합니다. 시위를 해도 변화가 없을 때 ‘희망소멸’에 직면합니다. 그리고 “한 집단이 미래를 내다보는데 계속 고통만 받을 뿐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유일한 길로 폭력에 주목하기 시작” (116p) 한다는 것입니다.
‘희망소멸’이 ‘지위격하’와 연결되면 더 위험해집니다. 저자는 ‘한때의 지배 집단이 환경 변화로 권력을 잃거나 힘이 줄어들면 내전 발발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합니다. 아이러니합니다. 다양한 사례를 분석해 보니까 원래 힘이 없었던 집단은 잘 내전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단, 갖고 있던 힘을 빼앗긴 집단은 위험을 감수하며 폭력을 쓰고 내전을 일으키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한때 힘을 가졌던 집단이 ‘지위격하’되고, 시위를 해도 바뀌는 것이 없다며 ‘희망소멸’되고, 그 감정과 생각을 소셜미디어로 서로 나누며 강화하면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서부지법 폭동이 발생하기까지 한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설마 한국에서 내전이?

‘그래도 설마 한국에서?’하는 생각 안 드세요? 저도 듭니다. 반군이 결성되어 화기로 무장하고, 특정 지역을 지배하며 정부를 공격하는 시리아, 캄보디아 같은 상황이 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선진국에서는 ‘테러’의 형태로 내전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통일된 큰 조직보다는 작은 조직, 개인이 정부, 정치인, 언론에 대한 공격을 자꾸 일으켜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 거란 겁니다.
다행히 서부지법 폭동에 잇따른 폭력 사태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아노크라시’로 점점 가게 된다면, 희망소멸과 지위격화, 소셜미디어의 부작용이 계속된다면 위험은 커집니다. 위험 요소들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내전’을 겪게 될 거란 경고가 아주 와닿은 독서였습니다.
저자는 해결책도 여러 가지 제안하는데요. 그중 특히 와닿았던 것이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시민 참여 활동’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께 좋은 활동을 하나 소개합니다. 계단뿌셔클럽이라는 비영리조직에서 하는 ‘정복활동’이라는 것인데요. 딱 2시간만 내시면 하실 수 있고…
솔직히 내전보다 정복활동 참여자 모집이 더 무서운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