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빼고 재건축

새분당플랜

우리 빼고 재건축

지난 편지에서 ‘재건축 사업’의 구조에 대해 설명 드렸습니다. 오늘 편지에서는 본격적으로 손익을 따져보겠습니다. 특별법을 만들어 우리 동네를 재건축하는 일이 저 같은 무주택자 청년에게 반가운 일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1기 신도시 재건축은 높은 확률로 불리한 결과를 낳습니다.

공공성을 줄여야 사업이 된다

표: 우리 동네 재건축 시뮬레이션 4개 시나리오

아파트 재건축은 아파트 소유자들이 팀(조합)을 꾸려서 하는 사업입니다. 그리고 사업의 성패는 비용에 해당하는 ‘분담금’으로 결정됩니다. 분담금 결정 3대 요소는 공사비, 용적률, 공공기여라는 점을 지난번에 설명 드렸죠? 공사비가 적을수록, 용적률(높이 지을 수 있는 정도)은 높을수록, 공공기여분은 줄일수록 분담금이 줍니다. 분담금이 줄면 이익이 늘어나겠죠?

3개 요소 중에서 가장 관건이 되는 건 ‘공공기여분’입니다. 왜냐하면 용적률은 특별법까지 만들어서 이미 ‘최대한’으로 허용할 분위기입니다. 공사비는 줄이고 싶다고 한없이 줄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공공기여분은 사회에 환원하는 몫이라 대부분 줄이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위 표에서 보는 것처럼 조정했을 때 분담금 차이가 크게 벌어집니다.

위 표는 저희 동네 32평 아파트 재건축을 간단히 시뮬레이션해 본 것입니다. 맨 위 시나리오는 ‘통상적 가정’인데요. 통상적으로 가정하면 분담금 8억을 내고, 집값은 5억 정도만 올라 오히려 손해를 봅니다. 재건축을 다들 포기하겠죠. 공공기여를 낮출수록 이익이 커집니다. 절반 수준까지 낮추면 이익이 꽤 나니까, 재건축 사업이 추진 됩니다. 공공성을 줄여야 사업이 되는 셈입니다.

공공기여를 줄이면 생기는 일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스위스 도시 재개발 모형

그런데 ‘공공기여’, ‘공공성’ 이런 말 좀 추상적이죠? 공공기여분의 결과는 ‘도시 기반 시설’과 ‘공공주택’입니다. 분당 같은 신도시 대부분 도시 기반 시설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인구 30만을 염두에 두고 도로, 난방, 수도, 전기 등 기반 시설을 만들었는데 이미 40만이 넘었습니다. 재건축이 끝나면 인구는 더 늘어날테니 공공기여분을 잘 활용해 인프라 확충을 해야 합니다.

공공주택에는 흔히 생각하는 ‘공공임대주택’입니다. 제가 참고한 블로거 루카와님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저희 아파트 단지는 재건축 후 2,800채의 집이 더 생깁니다. 현재 2,400  세대가 살고 있으니 2배 수준이 되는 거죠. 이 2,800채 중에서 1,200채는 일반 분양, 1,600채는 공공기여분입니다. 공공기여분은 임대주택이 되거나 (공공)분양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공공기여를 줄이면 두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집과 인구는 느는데 도시 기반 시설 확충이 안 되어 큰 불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저 같은 세입자의 주거비용이 높아집니다. 저는 지금 12평 아파트에서 2억 원대 전세를 살고 있습니다. 동네가 큰 평수의 새 아파트로 다 바뀌면 더 이상 지금 조건으로 살 수 있는 기회는 없습니다. 기대해 볼 수 있는 건 임대주택이지만, 공공기여를 줄이면 임대주택 당첨 기회가 줄어듭니다.

무주택자 여러분, 처음 들으시죠?

표정이 찡그려진 이대호

원래 법대로 재건축하려면 사업성이 좋지 않아 분당 재건축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야가 힘을 합쳐 ‘특별법’을 만들었습니다. 용적률을 완화해 높이 지을 수 있도록 해준 거죠. 동시에 조건을 걸었습니다. ‘미래세대의 몫을 가져와서 신도시만 높이 짓게 해준 건 특별한 혜택이니까, 높이 지을 때는 특별히 공공기여를 더 하도록 해. 알았지?’

그러나 지금 분위기를 보면 ‘특별한 혜택’은 남고 ‘특별한 기여’는 사라질 것 같습니다. 저는 최근의 국토교통부의 ‘이주단지 계획 백지화 발표’가 대표적인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대규모 재건축이 시작되면 원래 그 단지에 살던 사람들이 주변으로 이사를 가야 합니다. 그러면 주변에 집이 부족해지니까 전세, 월세가 급격히 상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책’이 필요합니다.

국토부는 원래 주변에 이주 목적의 임대주택을 만들어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다 최근 ‘주민들이 원하지 않는다’며 계획을 취소했습니다. 어라? 왜? 저 같은 1인 가구 청년 무주택자 주민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찬성할 겁니다. 아마 국토부에 열심히 의견을 전한 주민들은 주택을 소유하고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는 4인 가구 주민들이겠죠.

즉, ‘혜택’이 필요한 사람들은 관심이 많고, ‘기여’가 필요한 사람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1기 신도시 재건축은 ‘우리’에게 불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양가는 15억쯤 할 텐데 청약 넣어봐야 의미 없고, 공공기여가 줄면 임대주택 당첨도 어렵고, 공사하면 전월세 가격 올라서 주거 비용 부담이 커질 테니까요. 국토를 뒤흔드나 우리 자리는 없는 것 같은 노후계획도시 재건축, 정말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아가는 일일까요?

갸우뚱~ 갸우뚱~
이대호 드림.

*오늘 편지를 쓰면서 네이버 블로거 루카와님의 재건축 포스팅을 보며 많이 배우고 참고했습니다.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