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어느 대학 나왔나?

계단뿌셔클럽 (36)

자네는 어느 대학 나왔나?

퀴즈 하나 내겠습니다. 지금까지 계단뿌셔클럽에 참여한 사람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몇 년도에 태어났을까요?

목 선생님 등장!

목 선생님의 인물도감에 들어간 이대호

정답은 41년생입니다. 지난 토요일 서현역에서 열린 클럽 활동에 찾아오신 목 선생님은 1941년 이북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한국전쟁 때 내려와 서울에 터를 잡고 사셨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충무로에서 인쇄소를 운영하셨고, 지금은 아들이 대를 이어 운영합니다. 은퇴 후 서울 강북에서 성남으로 옮겨서 배우자와 함께 사시는데 주변을 산책하는 것이 취미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계단뿌셔클럽을 알고 오시게 됐는지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여기저기 단톡방에 초대장을 공유했는데, 그중 한 군데서 보셨다고 합니다. 읽어봐도 뭔지 잘 이해는 안 됐지만, 가까운 곳에서 하길래 신청서를 제출하고, 수신한 문자 메시지를 확인해 오셨다고 합니다. 스마트폰을 잘 다루지 못하시는 저희 할머니를 생각하니 정말 놀라웠습니다.

재밌었던 점은 저에게도 이것저것 물으시더니 메모를 상세히 남기셨습니다. 어느 대학 어느 과를 졸업했는지, 고향은 어디인지, 몇 년생인지, 심지어는 잠깐 일어나 보라고 하시더니 제 얼굴 사진을 찍어 연락처에 저장하셨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기준으로는 좀 이상한 일이지만, 곤충 도감을 만들듯 진지하게 메모를 남기는 할아버지의 부지런한 모습에 웃음이 났습니다.

아니, 어디서 배우셨어요?

위 데이터는 목 선생님께서 직접 등록하신 것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목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계단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직접 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목 선생님과 동년배인 저희 할머니는 카카오톡 채팅방에 들어가서 내용을 읽는 것만 하시거든요. 계단정복지도 앱을 직접 사용해 등록하시게끔 하기보다는, 제가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시범을 보시고는 직접 해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까지도 갸우뚱했지만, 원하시니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휴대폰에 같이 계단정복지도 앱을 설치하고, 회원가입 후 눈앞에 있는 장소를 직접 검색하셨습니다. 상호를 불러드리니 능숙하게 직접 입력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화면의 안내 사항을 또박또박 읽으며 천천히 요구되는 정보를 입력하셨습니다.

등록에 성공한 목 선생님은 껄껄껄 웃으며 아주 기뻐하셨습니다. “새로 만난 친구 덕분에 제가 오늘 또 새로운 걸 배우네요! 하하하!” 그 모습을 보니 적당히 어르신 말동무나 해드리면 되겠지 생각했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목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진지한 마음과 배움에 대한 기대를 품고 클럽에 찾아오셨는데, 저는 그 분의 용기와 열정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SCC의 한계 돌파

목 선생님과 이대호

계단뿌셔클럽이 극복해야 할 한계는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중 특히 중요한 것은 ‘이동약자의 참여가 적다’는 것입니다. SCC는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이 ‘계단정보 없음’이라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것을 지향합니다. 지금은 ‘그 친구들’ 비중이 높고, 휠체어 사용자나 유아차 이용자, 어르신, 즉 이동약자의 참여는 적습니다. ‘함께’ 해나간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중에서도 사실 어르신의 참여는 기대도, 목표도 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단정복지도 앱을 사용해서 계단정보를 등록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문제해결의 주체라기보다는 배려 대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명랑한 41년생 목 선생님의 등장은 그 고정관념을 깨뜨렸습니다. 어르신과 동료가 될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물론 모든 노인이 목 선생님처럼 용감하고 호기심이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르신이 한꺼번에 많이 오시면 현장에 혼선이 클 테니 준비가 더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이동약자와 그 동행인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말할 때 어르신을 아예 빠뜨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우리한테 관심 없으셔’가 아니라는 걸 목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됐으니까요.


클럽 활동을 종료할 때 목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활동 소감으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편안한 저녁 보내셔요!

이대호 드림

“오늘 여기 올 때 뭘 하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왔습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은 가면 무언가 배울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오늘 우리가 이렇게 만나서 친구가 됐습니다. 여기 열 분 넘게 계시는데, 친구들이 저에게 하나만 가르쳐주어도 10개를 넘게 배울 수 있을 겁니다. 오늘 좋은 친구들을 만나 많이 배웠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하루입니다. 앞으로도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