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하고 감개무량했던 주말
계단뿌셔클럽 (34)
가끔 사람이 정말 기분 좋을 때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잖아요? 지난 일요일의 제가 그랬습니다. 계단뿌셔클럽(SCC) 가을 시즌을 함께 꾸려갈 크루(운영진) 45명이 모이는 크루데이가 열렸습니다. 정말 감개무량하더라고요. 단순히 인원이 많아서는 아닙니다. 큰 감동을 느낀 데에는 세 개의 이유가 있습니다.
다양해서 평범한 사람들
“생각했던 것보다 다들 평범해서 놀랐어요”
12개 지부가 만들어졌습니다. 경기도에는 부천과 성남 두 곳입니다. 서울에는 강남, 관악, 도봉, 마포, 서대문, 성동, 용산, 은평 총 8개 지부입니다. 인천에는 강화, 남동/부평으로 2개 지부입니다. 지부 별로 한 명의 리더(반장), 세 명의 가이드(부반장)로 구성되니 약 50명의 크루가 모였습니다. 목표는 40명, 10개 지부였는데 감사하게도 초과 달성했습니다.
게다가 다양한 크루가 모였습니다. 대외활동에 관심 많은 대학생, 취준생들도 계셨고요. 직장만 다니기에 심심했던 회사원들도 있습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 당사자도, 사회 문제 해결을 업으로 삼는 활동가들도 있습니다. 마포지부는 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이수하는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께서 꾸리셨습니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온 현직 지방의원들도 있습니다.
보통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그램에는 공익, 공공 분야 종사자가 많습니다. 물론 좋은 일입니다. 그치만 ‘또 우리끼리만 하는 것 같네’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이번 크루 모집도 ‘업계 사람’ 위주가 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양합니다. 자랑을 하나 하자면요. 강화지부는 한 중학교 동아리 친구들끼리 꾸렸습니다. 같은 학교 학생들을 모집해 정복대를 꾸린다고 합니다.
정말 멋지죠?
의미와 재미 중에는 재미를 먼저
크루데이 기획 과정에서 동료 수빈님과 소희님의 강력한 의견이 있었습니다. 교육 내용을 줄이고, 친해지는 시간을 늘리자는 거였습니다. 총 3시간의 행사 중 절반인 90분을 아이스 브레이킹과 팀 빌딩으로 꾸리자고 했습니다. 저는 90분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두 분의 의견이 확고하고, 사실… 저는 별 힘이 없는 사람이다 보니… 두 분의 의견을 따랐습니다…
근데 아주 탁월한 결정이었습니다. 소희님은 세 개의 게임을 준비했습니다. 계뿌클에 관한 퀴즈를 푸는 계뿌클 골든벨, 두 음절을 불러주면 두 음절을 더 붙여 단어를 완성하는 단어 퀴즈, 영화와 드라마 제목 맞추기 퀴즈쇼입니다. 팀별 번개 모임에 쓸 기프티콘을 상품으로 걸고, 지부 단위로 경쟁하도록 했더니 공기가 바뀌었습니다. 흥분의 도가니가 되어서 너무나 시끄러웠습니다!
광란의 90분이 지나고 다시 무대에 서서 보니 크루분들의 표정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여기 혹시 이상한 곳 아니겠지’하는 긴장감이 증발하고 ‘또 어떤 재미난 것이 이어질까’ 하는 기대감이 입꼬리와 눈꼬리마다 피어있었습니다. 기대감은 곧 높은 집중력으로 전환됐고, 수월하게 필요한 내용을 다 알려드릴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열심히 귀 기울여 들어주시더라고요.
정신 차려! 내 목표는 크루의 행복!
“대호님, 이거 좀 수정해야 할 것 같은데요…?”
크루데이 전날 밤, 행사 발표 자료(PPT)를 겨우 마감했습니다. 동료들께 공유해 검토를 요청했습니다. 다음 날 행사 준비를 위해 미리 만난 공동대표 수빈님이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크루 입장에서 이 발표 들으면 숙제 주고 일 시키는 느낌이 들 거 같다고 했습니다. 목표 달성되어서 사회가 나아지는 거, 물론 좋은데 크루인 나의 입장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겁니다.
찬찬히 살펴보니 동의가 됐습니다. 이번 시즌 목표와 해야 할 일들은 아주 구체적으로 쓰여있지만, 이 활동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설명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지지난 주 편지에서 저는 이번 시즌에는 크루의 행복과 성장을 목표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눈앞의 과업을 허겁지겁 쳐내다 보니 지난 시즌에서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SCC에서 제 역할은 커뮤니티 빌더입니다. 건강한 공동체를 건설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 계뿌클 커뮤니티의 주인공은 크루입니다. 크루가 즐거워야 커뮤니티가 성장하고, 더 많은 멤버들이 유입되고, 문제 해결이 빨라집니다. 수빈님 덕분에 그 사실을 상기하고 내용을 고쳤습니다. 크루의 행복한 가을을 만들어야 결국 문제도 해결될 거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지난 시즌 크루데이는 어색하게 시작해 어색하게 끝났는데, 이번엔 우리 지부 사람들이랑 또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어요!”
두 시즌 연속 지부 리더로 활동하는 동료가 다음 날 들려준 후기입니다.
아슬아슬했지만, 그래도 잘 마친 것 같습니다.
크루 여러분, 함께 행복한 가을 만들어봐요!
여러분의 동료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