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정치인 이대호

<선거에서 이기는 법> 독후감

뻔뻔한 정치인 이대호

<나쁜 정치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독서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은 <선거에서 이기는 법>인데요. 로마 최고의 연설가로 꼽히는 마르쿠스 키케로의 동생인 퀸투스 키케로가 썼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형을 위해 쓴 2000년 된 책입니다. 이 책을 읽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2년 사이에 나 정말 뻔뻔한 사람이 됐구나…’

키케로와 더불어민주당 당원 모집

책 <선거에서 이기는 법>

키케로가 자주 반복하는 말은 “요구하라”입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푼 적이 있다면, 반드시 지지하고 기여할 것을 요구하라고 합니다. 설령 은혜를 베푼 적이 없더라도 그 사람의 지지가 필요하다면 요구하라고 합니다. 당선된 이후에 걸맞은 보답을 하겠다고 약속하면 된다면서요. 악착같이 요구해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키케로의 일관된 조언입니다.

정치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했던 ‘당원 모집’ 활동이 떠올랐습니다. 당내 경선을 통과해 민주당 성남시장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저를 지지하는 당원이 많아야 합니다. 기존 당원을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지해 줄 분을 가입시키는 게 우선입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더불어민주당 당원 가입을 권유하는 영업 활동을 했는데요. 정말로 괴롭고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등가교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이득이 되지만, 상대방에게는 아닙니다. 애정 없는 조직에 적을 두어야 하고, 매달 천 원씩 당비도 내야 합니다. 제가 당선 가능성이 높으면 재미라도 있겠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겨우 백 명 모으기도 힘들었습니다. 삼십 년 동안 맺은 인연을 모조리 포인트로 전환해 결제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천 명을 모아야 경선을 통과합니다. 정말 울고 싶었습니다.

요구하지 않으면 목표를 이룰 수 없다

열심히 요구하는 이대호

2년이 지났습니다. 2년 사이 저는 더 잘 요구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정치를 하면서 사람이 뻔뻔해졌습니다. 전에는 상대방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면 잘 말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아닙니다. 필요하면 더 잘 요청합니다. 저에게 도움 줄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도 연락해서 궁금한 것을 묻습니다. 가능하면 앞으로 더 뻔뻔해지고 싶습니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요구하지 않고 목표를 이룰 수 없다’는 걸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고, 등가교환 거래만 하면서 목표를 이루고 싶었습니다. 그게 마음 편하고 안전하니까요. 그런데 폐 끼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건 별로 없습니다. 특히 수많은 유권자의 지지로 선거에서 당선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권력형 성범죄를 근절하는 일, 좋은 스타트업을 많이 탄생시키는 일, 그 외 제가 하고 싶은 정치에는 권력이 필요합니다. 권력을 얻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서 폐 끼치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승패는 명확합니다. 그럼 선택해야 합니다. 폐 안 끼치고 목표도 못 이룰지, 폐를 많이 끼치더라도 끝내 권력을 획득해 누군가의 삶에 위안이 될지를 말입니다.

‘이득’이 전부는 아니다

이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SCC '23 봄 시즌

뻔뻔해질 수 있었던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득’이 되지 않는 요구에 응할 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또 자신에게 되갚을 수 없더라도 기꺼이 도움을 베풀어 주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요구를 들어줄 수 없더라도 기분 나빠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확인한 것입니다. 성남시장 선거, 계단뿌셔클럽, 그린벨트 등 다양한 일을 벌였습니다. 최대한 상호 이익이 되도록 설계하려고는 했지만, 당연히 한계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도움과 기여, 참여가 필요한 일들이었습니다. 제 인생에 가장 부탁, 요청, 요구, 읍소를 많이 한 시간이었습니다.

근데, 부탁하는 사람이 절실해 보이면 긍정적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 관심사와 맞지 않는 부탁이라도 말입니다. ‘에라 모르겠다, 물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물어보면 ‘뭐야, 별 관심도 없는데 나한테 왜 이래’라고 반응하는 사람보다 ‘정말 진심인가 보네.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았습니다. 특히 ‘대의’가 있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정치에서는 ‘이득’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절실함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요청이 하나 있습니다. 계단뿌셔클럽이 ‘비영리민간단체’로 발전하기 위해 회원을 모집합니다. 내용을 읽어보시고 괜찮으시다면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모두가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면 저와 몇몇 동료들만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함께 해주셔야 비로소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바쁘시겠지만 잠깐 살펴봐 주세요!

여러분의 뻔뻔한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