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기회? 온전히 동의하지 않습니다.

계단 뿌셔 클럽 (30)

위기는 기회? 온전히 동의하지 않습니다.

지난 편지에서 계단 정보를 실수로 잃어버린 사건을 설명드렸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고, 혼자 회고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위기를 통해 성장할 수 있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위기를 거치며 성장한다.

사진 복구 작업 2회차 진행 중

위기가 닥쳤을 때 '책임 소재 따지기'하는 팀이 있습니다. 반면에 바로 '위기 대응'하는 팀이 있습니다. 계단 뿌셔 클럽은 이번 일을 계기로 후자에 더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실수를 감추려고 사실을 숨기거나 책임 공방으로 시간이 지체되면 문제 해결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 일 없이 투명하게 소통하고 지체 없이 대책을 수립, 논의, 발표했습니다.

'남 탓하지 않는 팀'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상호 신뢰입니다. 실력과 인품에 대한 구성원 간 존중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생겼을 때 '쟤, 또 뭐 제대로 안 했나보다', '문제가 더 있는데 숨기는 것 아니야?' 하지 않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생각합니다. 그리고 감정 낭비 없이 위기 대응을 잘 해낸 공동의 경험은 구성원 간 더 큰 신뢰로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문제 발생 직후 여기저기 문제 상황을 전하는데, 모 지부의 파트너로 활동한 동료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난 앞으로 이대호가 하자는 일은 다 믿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솔직히 데이터 유실 사고 생겨도 제품 팀이 말 안 하면 누구도 알 수 없어. 멤버들이 자기가 등록한 데이터 잘 있는지 자주 확인하진 않을 테니까. 근데 이걸 이실직고 하고 만회하겠다고 하니까 믿을 만한 친구라는 생각이 드네."

엎질러진 물을 손으로 훔치고 있던 제게 봄 날의 햇살 같았습니다. 이 말 때문에라도 가능한 정직하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왜 잘 안 될까?

복구도 하고 밥도 먹고!

SCC는 위기를 건강하고 발전적으로 잘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팀 워크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고, 복구 작업도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근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위기 상황이 정치권에서 닥쳤다면 건강하게 잘 풀어나가 성장의 계기로 삼기 어려웠을 것 같다고요.

정치권에서 잘못이 드러나면 강한 문제 제기와 비난에 직면하게 됩니다. 적대적 언행이 쇄도하면 아무리 스트레스 내성이 큰 사람이라도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럼 팀 내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남 탓'하기 쉽습니다. 책임 공방이 시작되면 내부 역량이 약화되고, 집중력이 분산됩니다. 이런 어려움을 감수한 상태에서 위기 대응을 하면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정치권 밖에서도 조직의 영향력과 사회적 책임이 커지면 위기 극복의 난이도가 높아집니다. 그렇지만 정치권에서는 영향력과 책임이 크지 않은 개인이나 조직도 굉장히 고난이도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별다른 자원이나 성취가 없는 팀인 경우에도 말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제로섬 게임 / 비제로섬 게임

남을 비판하길 좋아하는 사람이 유독 많아서 그럴까요? 그보다는 '환경'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당 활동, 정치 활동은 '제로섬 게임'이 대부분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즉, 정치는 '각자 잘 하면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게임'이 아닙니다. '배분할 몫은 이미 정해져 있고, 내가 더 많이 갖느냐, 네가 더 많이 갖느냐를 다투는 제로섬 게임'입니다.

계단뿌셔클럽은 '비제로섬 게임'을 합니다. SCC가 잘 한다고 해서 몫을 빼앗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협력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개인, 단체가 많습니다. 실제로 최근, 여러 기업, 기관, 단체에서 협력하고 싶다는 제안을 보내주십니다. SCC를 무너뜨릴 유인을 가진 경쟁자가 없고, 아직 SCC가 사회적 영향력도 크지 않으니 정신만 잘 차리면 위기 극복이 가능합니다.

정치의 환경은 다릅니다. 정치의 핵심 자원은 '권력'이고 권력은 '자리'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자리'의 수는 정해져 있습니다. 가령 국회의원 의석 수는 300명으로 고정돼 있습니다. 총선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아무리 다 같이 잘 해도 늘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경쟁자가 더 잘 하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남에게 관심을 갖고 삐딱하게 볼 유인이 큽니다.


'비제로섬 게임'에서는 내가 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연히 자기 역량 개발에 관심과 시간을 많이 쓰게 됩니다. '제로섬 게임'에서는 남이 못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따라서 관심과 시간이 '나'에서 '남'으로 분산됩니다. 협력적 경쟁만큼 적대적 경쟁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제로섬 게임'만 잘 하면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있을까요? 정치인은 결국 '제로섬 게임'에서 승부를 봐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실력 있는 정치인이 될 수 있을까요?
고뇌하는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