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민주당 우파가 아니구나?

세 번째 권력 출범식 참석 후기

나는 민주당 우파가 아니구나?

여러분은 자신의 ‘정치 성향’을 어떻게 정의하고 계세요? 정치 성향을 정의하는 데 진보주의자, 보수주의자, 좌파, 우파, 개혁주의자, 중도주의자 등 다양한 말이 쓰입니다. 그중에서 마음 붙일 말을 저는 잘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토요일에 참석했던 한 행사에서 제 정치적 지향을 설명할 수 있는 말들을 만나게 됐는데요. 바로 ‘중원’입니다.

세 번째 권력 출범식

출처: 세 번째 권력

‘세 번째 권력’(이하 세:권)은 새로운 정당을 만들려는 정의당원 모임입니다. 류호정 국회의원, 장혜영 국회의원, 조성주 정치발전소 이사장이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정의당은 당대표가 ‘재창당이 필요하다’고 공식적으로 말할 만큼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세:권은 ‘정의당 재창당’의 일환으로 새로운 정당 창당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지난주 토요일 국회에서 세:권의 출범식이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초대해 주셔서 참석하게 됐습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세:권이 만들고자 하는 정당이 무엇인가?’였습니다. 나눠주신 홍보물을 잘 읽어보니 아래 세 가지가 목표라고 합니다.

  1.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책임지는 정당
  2. 상대의 멸망을 기원하는 대신 중원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정당
  3. 양당이 외면한 사회경제적 기득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전진하는 정당

사실 이날 행사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건 ‘이준석, 박지현’의 참석이었습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참석해 축사했습니다. 이분들과 장혜영, 류호정 국회의원이 손잡은 사진이 언론을 통해 많이 보도됐습니다. 그러나 제 관심사는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바로 ‘중원’입니다.

중원? 중원!

조성주 세:권 공동운영위원장님은 세:권 소개 발표에서 지금 한국 정치의 ‘중원이 비어있다’고 했습니다. 아래 그림을 한 번 보시겠어요?

출처: 세 번째 권력 (일부 수정)

정치 성향을 구분할 때 가장 많이 쓰는 기준은 ‘진보/보수’(가로축)입니다. 그다음으로 일반적인 기준은 ‘국가/권위주의 지향이냐 자유주의/다원성 추구냐’(세로축)하는 것입니다. 이 두 기준은 다들 익숙하시지요? 저는 사회/진보 성향이 조금 더 강하고, 자유/다원성 지향이 깊습니다. 여기까지는 익숙합니다. 조 이사장님은 여기에 더해 ‘책임정치의 공간, 중원’을 제시합니다.

책임정치란 입장이 다른 사람, 세력과도 대화하고 타협해서 결정을 이끌어내는 정치입니다. 예를 들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여러 사안에 있어서 입장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국회에서 어떤 결정을 하려면 양쪽 다 100%는 포기해야 합니다. 속 쓰려도 양보, 타협을 감수하는 것이 ‘책임 정치’입니다. 양보, 타협 없인 결정이 안 되고, 정치권력은 ‘결정할 책임’을 지니니까요.

위 그림을 보시면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중원 밖으로 나가 있습니다. 지금 정치가 잘 작동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국민의힘은 야당 탓, 노조 탓, 문재인정부 탓만 하며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하지 않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 탓, 대통령 탓, 여당 탓을 하며 여당과 대화하고 타협하지 않습니다. 야당은 다수 의석으로 밀어붙이고 여당은 거부권을 행사합니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권한과 책임이 정치에 있는데, 정치는 결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민주당 우파가 아니다

디지털 기술과 시장을 좋아하지만 좌파!

이 발표를 듣고 저의 정치적 지향을 더 잘 설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개인의 권리가 더 잘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차별과 폭력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막아야 합니다. 타고난 지위가 인생을 다 결정하지 않도록 국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안전망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저는 ‘타협’과 ‘양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엉망이라고 해도 대화해야 합니다. 필요하면 100%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타협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0% 만족’이 ‘결정 미루기’보다 낫습니다. 정치에서 내가 원하는 100%를 관철하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스스로를 ‘나는 민주당 우파인가?’하고 생각했습니다. 보수주의자의 주장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늘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원으로 가자’는 발표를 듣고 보니 제가 지향하는 것은 ‘민주당 우파’나 ‘중도주의’가 아니라 ‘중원의 좌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혹시 저랑 같이 ‘중원’으로 안 가시겠어요?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