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 만들기

의무방어전 문제 (3/3)

단톡방 만들기

온종일 우산 들고 다녔는데 비를 못 만난 화요일이었네요.
열대야를 이겨내고 오늘 하루 잘 보내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 편지는 ‘의무방어전 문제’ 마지막 편입니다. 의무방어전 문제란 ‘누가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하든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공약을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요. 지난 편지에서는 문제의 구조를 분석했습니다. 오늘은 해결 전략을 소개합니다.

전략: 2,000명짜리 단톡방 만들기

지난 편지 내용에서 부동산 가격을 높이는 공약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조직’의 차이로 설명했습니다. 부동산 소유자는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의제를 중심으로 단톡방을 만들어 활동하고 요구합니다. 반면 세입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또 전자는 자신의 요구를 반영하는지를 살펴보고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는 집단이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거는 인원이 적더라도 소유자의 의견을 열심히 반영합니다.

만약 세입자들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의제를 발굴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단톡방을 만들어 활동하고 요구하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후보자들은 그 요구를 반영하려고 할 것입니다. 설령 세입자 집단의 요구와 소유자 집단의 요구가 충돌하더라도 세입자 집단의 수가 더 많다면 후보자들은 세입자 집단의 요구를 반영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으니까요.

‘의무방어전 문제’의 해결 방안은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의제를 찾고, 그것에 동의하는 사람을 많이 찾아내고, 설득해서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입니다. 2,000명짜리 단톡방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제적 불평등 완화에 기여하는 공약을 내는 것이 ‘의무방어전’이 되도록 하는 것이 해결 전략입니다.

세상에는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수많은 정책이 있습니다. ‘신도시 개발’과 같은 개발 정책, ‘기초생활보장 제도’ 같은 복지 정책 등 다양합니다. 다양한 정책 중에서 우리 동네 유권자들에게 이익이 되고,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으면서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을 찾아 사람을 모으는 것이 문제 해결의 방편입니다.

그렇다면 성남에서 만들 수 있는 ‘단톡방’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성남의 격차보정장치: 서현동 110번지

2019년 국토교통부는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110번지 일대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합니다. LH공사가 2,500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짓겠다는 내용입니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도권에 신규 주택을 공급해야 합니다. 110번지 계획도 그 일환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파트는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주변 주민들의 반대가 거셌기 때문입니다. 110번지에 2,500세대 대단지 아파트가 공급되면 주변 교통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학교의 수용인원이 적정 수준을 넘어가는 과밀학급 문제도 생깁니다. 정부가 사전에 보완 대책을 잘 마련하고 발표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반대한 주민들이 소송까지 하면서 개발은 불투명해졌습니다.

저는 보완대책을 잘 마련하되 반대하는 주민을 설득해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 문제’는 많은 성남시민의 큰 고민입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를 지나며 우리는 ‘공급 없이 부동산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니 여력이 있다면 개발을 추진해 수많은 가족의 보금자리를 제공할 방법을 찾는 것이 타당합니다.

또 국토부의 계획에는 2,500세대 중 일부를 공공임대주택으로 만든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저는 공공임대주택이 어떤 사람들의 삶을 위기에서 구해줄 수 있는 아주 가치 있는 정책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사업 실패로 어렵고 우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제가 평범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새로 주택을 공급하고, 그 일부를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배정할 수 있다면 저는 ‘격차보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원하는 사람들을 2,000명쯤 모으고,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보완 장치를 제안할 수 있다면 ‘의무방어전 문제’를 조금 풀 수 있지 않을까요?


저를 포함해 수많은 정치인이 각자의 동네에서 ‘의무방어전 문제’에 도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매우 어려운 일이고, 저도 엄두가 잘 안 나는 일이라 쉽지 않을 것 같지만요.

그리고 오늘도 지각해서 죄송합니다. 이제 사과하기도 면목이 없습니다만,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음 편지에서는 선거 끝나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한 주 잘 보내시고 다음 주에 또 만나요!

부족함 많은 여러분의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