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해단파티 2부

산책캠프 해단파티 (2)

눈물의 해단파티 2부

공교로운 사실을 한 가지 알려드릴까요? 오늘 편지는 100번째 편지이면서, 이대호의 정치 도전기 1막의 마지막 편지입니다. 1막을 딱 100장의 편지로 연재했습니다. 100통의 편지를 보내는 동안 꾸준히 읽어주신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지난 편지에서 ‘회고 영상’까지 소개했습니다. 오늘은 해단 파티에서 왜 눈물이 났는지 설명하겠습니다. 그렇게 1막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따뜻한 말은 위험해

아주 감동적인 회고 영상이었습니다. 산책캠프 덕분에 지난 몇 달간 즐거웠다는 이야기를 친구들이 들려주는 대목이 특히 그랬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추억이 됐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기 때문입니다. 당선이 되지 못했으니까 더더욱 그런 소망이 간절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많은 친구가 끄덕여주어서 눈시울이 붉어질 뻔했습니다.

ⓒ 엄설아

영상을 보고 마지막으로 소감을 한마디씩 했습니다. 직장 동료였던 G는 발을 다쳐 깁스했습니다. 목발을 짚으며 굳이 찾아온 이유는 ‘아무도 해단파티 안 갈 거 같아서’였답니다.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하는 모습 지켜봤는데, 아무도 마지막을 함께 해주지 않으면 마음이 아플 것 같았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온 걸 보니 괜히 왔다며 웃더군요.

계단정복지도를 함께 만든 친구 S는 “저는 원래 정치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었어요. 아마 이대호가 계단정복지도를 함께하자고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렇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계단정복지도를 만들면서 즐겁고 보람찼고, 앞으로도 재미있고 보람찬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졌”다고, 재미있는 일을 벌이고 초대해주어서 고맙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달라고 S가 말했습니다.

해방

타다 서비스 종료 안내가 나간 날 밤에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종종 연락을 나누던 타다 드라이버 최 선생님이었습니다. 최 선생님은 말기 암 투병을 하는 배우자를 돌보는 60대 초반의 남성이었습니다. 배우자 병원비를 벌기 위해 하루에 두세 시간씩 자면서 타다 운행과 대리운전을 했습니다. 타다 이제 정말 끝나는 거냐면서 “매니저님은 회사에 계속 계시는 거죠? 그럼 저는 이제 어떡하나요?”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때도 부채감과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동료의 끔찍한 불행을 막지 못했고, 좋아했던 분의 죽음도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 가운데 제 일상은 안온했습니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며 좋은 사람들과 일했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주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피폐해졌지만, 저는 일상이 깨지지도 일자리를 잃지도, 주변 사람들의 공격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해일이 지나간 자리에 탈 없이 서 있는 사람, 그 운 좋은 게 저였습니다. 다친 사람들 속에서 조금 옷이 젖었을 뿐, 멀쩡하게 서 있기가 창피했습니다. 죄책감과 부채감에 사로잡혀 어려운 일에 뛰어들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만 한다는 당위가 저를 짓눌러 정치 도전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당장 큰 권력을 얻어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상상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해야 마땅한 도전이었지만, 그래서 늘 억울했습니다. 더 역량 있고 뛰어난 사람들이 해줬으면 좋겠는데, 왜 저처럼 부족한 사람이 이 밑도 끝도 없는 도전을 하고 있는지 원망스럽곤 했습니다. 시민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거냐고, 내 삶을 어떻게 낫게 할 수 있냐고 물어올 때마다 지구 밖에 숨고 싶었습니다. 몰랐던 고통을 목격하고, 상대하고 싶지 않은 탐욕을 발견할 때, 이제 시작했는데 정치에 질렸습니다.

부채를 갚는 일은 지긋지긋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역량 밖의 도전 속에서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더 상처 입고, 힘든 사람들이 있는데 투정 부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억울함에 혼자 씩씩대는 밤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선택했으니, 이왕이면 좀 품위 있게 견디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것 뿐인데.

그래도

ⓒ 엄설아

고생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운 좋게 다치지 않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지도 않았습니다. 저 개인은 그렇게 대단히 잘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나마도 함께 했던 동료들이 있어서 했습니다. 그렇지만 해단 파티에서 친구들이 고생했고, 즐거웠다고 해줘서 기뻤습니다. 이때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습니다. 여기까지 왔으면 대가를 조금 치렀고 당장은 할 만큼은 했다는 해방감이 밀려왔습니다.

이제 저는 자유롭습니다. 당분간 해방입니다!


저는 양심에 따르면서도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정치가 그 방법인 줄 알았는데 선거 과정에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양심에 따르는 불행한 삶’과 ‘양심을 외면한 즐거운 삶’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저를 지배했습니다. 어느 쪽도 마음에 들지 않는 양자택일에 사로잡히자 저는 우울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울하지 않습니다. 양심에 따르는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의 다음 목적지를 묻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함께 가는 길은 어디든 여행입니다. 설령 그 길에 눈보라가 치고, 돌부리에 걸리고, 열대야에 잠 못 이루더라도 말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두려움에 함께 맞설 친구들, 바로 여러분의 탄생, 그것이 <이대호의 정치 도전기> 1막의 결론입니다.

ⓒ 엄설아

저와 함께 여기까지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다음 목적지까지도 잘 부탁드립니다.

함께 보낸 시간에 존경과 우정을 가득 담아
당신의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