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보면 황당한 성남시 탄생 과정

성남 재개발 3부작: 무책임한 네 집 마련 (1)

지금 생각해보면 황당한 성남시 탄생 과정

연말이라 바쁜 일, 갑작스러운 야근이 있지는 않으셨나요?
그래서 더 반가운 금요일 저녁입니다. 이번 주도 고생 많으셨어요!

오늘은 <성남 재개발 3부작: 무책임한 네 집 마련>을 준비했습니다. 앞으로 3주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 시리즈를 연재하게 된 이유를 먼저 설명하고, 1부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3부작 소개: 무책임한 네 집 마련

도시의 개발, 재개발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뤄주는 일입니다. 빈 땅이나 낡은 동네에 새 아파트를 지어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무주택자들에게 판매하니까요.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재개발이 ‘무책임한 네 집 마련’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살던 동네에서 대책 없이 쫓겨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도시 개발의 역사에서 반복된 무책임입니다.

오늘은 ‘세계인권선언기념일’입니다. 개발을 통한 ‘내 집 마련’은 인권을 보장하는 일입니다. 동시에 재개발로 쫓겨나는 사람의 인권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모두의 인권을 더 잘 보장하는, 책임감 있는 개발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남시 개발 역사를 돌아보고, 재개발을 앞둔 성남의 현실을 조사하고, 정치의 할 일을 찾는 것이 <성남 재개발 3부작: 무책임한 네 집 마련>의 취지입니다.

1960년대 불도저 서울시장의 무책임하고 야심 찬 계획

김 시장은 ‘돌격’이라고 쓰인 모자를 즐겨 썼다

1960년대 서울에는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빠르게 모여들었습니다. 서울에 직장과 일자리가 많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구가 느는 만큼 ‘집’은 빨리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살 곳이 없는 사람들은 국가 소유의 땅에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사유지에 맘대로 집을 지으면 땅 주인이 쫓아내지만, 주택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했던 정부는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60년대 후반의 서울시장 김현옥은 ‘판잣집’을 없애고 아파트를 짓고 싶었습니다. 더 살기 좋은 서울을 만들고 싶었죠. 집을 지으려면 일단 살던 사람들이 나가야 합니다. 불도저로 불렸던 김 시장은 청계천, 영등포, 용산 등지 판자촌에 살던 사람들을 쫓아낸 뒤, ‘강제로 사람을 트럭에 실어다 성남에 내려놓기’ 시작합니다. 땅과 일자리를 줄 테니 성남에 가서 살라는 거였습니다.

불도저 시장은 69년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서울에서 철거민, 이재민이 생길 때마다 강제로 트럭에 실어 황무지 같았던 성남으로 보냈습니다. 이렇게 강제이주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됐는 줄 아세요? 무려 2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경기도지사 vs 서울시장

당시 성남시는 도시 기반 시설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김시덕 선생의 <서울 선언>에 따르면 상하수도, 전기, 전신, 전화, 통신 등 아무런 기반 시설도 없는 땅에 온 20만 명의 빈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약속과 달리 일자리도 없었습니다. 2시간에 한 대 오는 버스를 타고 편도 2시간 걸려 서울에 출퇴근해야 했습니다.

청계천 동쪽 끝 판자촌에 살다 성남으로 이주한 봉제공장 직원 신순애 선생님은 “성남에 가보니 너무 상황이 열악해서 판자촌 때의 집이 별천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강제 이주는 계속 이어져서 경기도지사가 직접 성남시 수진동에 나와 트럭을 막아선 적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서울시장님, 성남에 제발 사람 좀 그만 보내라고요!”

불만은 고조됐습니다. 그러다 1971년 대규모 강경 집회가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8.10 성남민권운동입니다. 이주민에게 약속했던 분양가를 정부가 4배 이상으로 갑자기 인상했고, 이에 분노한 시민 수만 명이 강경 시위를 벌였습니다. 서울시장이 시위대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기로 하면서 3일 만에 소요 사태는 종료됐습니다.

무책임한 개발의 끝

1978년 청계천, 2005년 청계청 (출처: 조선일보)

판자촌 사람들이 성남에서 곤경을 겪었던 덕택에 서울은 도심 개발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개발로 인해 누군가는 새집을 얻게 됐고, 누군가는 사업체를 운영할 수 있게 됐고, 누군가는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판자촌에서 성남으로 쫓겨난 사람들은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집과 일자리를 제공한다던 약속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서울 개발이 꼭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성남으로 쫓겨난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는 데 자원이 충분히 투입됐다면 책임감 있는 개발이 됐을 것입니다. 1970년대 일이니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을까요? 다음 주 금요일 편지를 읽어보시면 함께 판단해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편지에서 약속한 대로 재개발 지역에 가서 당사자분들을 직접 만나고 왔거든요.

다음 주 금요일에는 50년 후 지금, 성남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시고 다음 주에 만나요!

이대호 드림.

※ 오늘 편지는 문헌학자 김시덕 선생님의 책 <서울 선언>과 세미나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성남의 역사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해주신 김시덕 선생님 감사합니다.